2011년 01월 15일
사소설, 음악, 불상


유메도노(夢殿)의 구세관음(救世觀音)을 보고 있으면, 그것을 만든 작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로부터 그 작품이 완전히 별개의 존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인데, 이것은 역시 각별한 일이다.
문예도 만일 나에게 그런 창작이 가능하다면, 나는 물론 거기에 내 이름 같은 건 붙이지 않을 것이다. 
-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

시가 나오야의 이 말은 사소설(私小說)의 의미를 가장 아름답게 요약한 문장으로 평가된다. 
내면으로부터 끌어올린 개인적인 음악, 음반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만든이의 이름같은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어서야
진짜 아름다움과 대면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음반을 놓고
마음 속에 저울을 그린 다음, 양쪽에 각각 음악과 작가를 올려 놓으면
작가 쪽이 무겁거나 평형 상태를 이루는지 경우가 제법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비틀즈나 밥딜런은 거의 평형을 이룬다. 
음악도 매우 좋아하지만 그 이름의 무게도 도무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 몇몇을 제외하고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보면,
음악으로 무게가 기운 음반들로부터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느꼈던 일이 더 많다. 



























그나저나 저 글을 보니 구세관음상이 보고 싶어졌다. 
사실 시가 나오야가 구세관음상을 만든 작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왠지 다른 속뜻이 숨어 있는 듯한 의심이 들기도 했다.
알려졌다시피 구세관음상은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의 얼굴을 본떠 만든 것으로 전해져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것이니 굳이 그 연유를 따지고 싶진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본 것이다.
물론 작가의 품성으로 보아 그럴리는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고백하건대 부모님의 허락없이 내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된다는 기분이 든 이래로
불상을 찾아다니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구세관음상이 있는 호오류지도 가보았지만 구세관음상은 개방하는 시기가 한정되어 있어서 보지 못했다. 
대신 호오류지의 백제관음상, 주구지의 반가사유상, 고류지의 반가사유상 앞에서 제법 긴 시간을 보냈다. 
(이곳을 방문할 분이라면 반드시 조그만 손전등을 준비하시기 바란다.
특히 고류지는 어두운 곳에 전시되어 있다.)
중앙박물관에서 6개월에 한 번씩 바꾸어가면서 전시하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들도 훌륭하지만
안타깝게도 백제관음상이나 주구지, 고류지의 목조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에는 2% 미치지 못한다. 

먹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음식의 진정한 맛과 품격을 결정짓는 것은 식재료이다. 
마찬가지로 불상을 놓고 보자면 개인적으로는 목조 불상의 아름다움은 각별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신라나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목조불상들이 적지 않았을텐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목조불상이 없다. 

있었던 것이 끝내 전해지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그때의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하나 쯤은 남아 전해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결코 지울 수 없다.  



by longseason | 2011/01/15 10:33 | 잡담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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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evin at 2011/01/15 19:03
어디서 본건지 일단 일본에서는 옛날 장인들이 자신들 작품에 이름같은걸 올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런거에 개념확립이 없었을 이유도 있었겠지만 자기 이름이 보여서야 자기 작품인줄 알게 되는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 설명을 본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바이런 베이에 3일간의 휴가를 끝내고 돌아왔는데요, 동네에 히피 분위기가 가득해서 불상이 여기저기 다 보이더군요. 아쉽게도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제 숙소 (호주인 민박) 앞에도 작은 불상이 하나 있더라구요. 저도 불상을 좋아해서 동양 전시회 같은걸 보면 여러나라의 불상을 관찰합니다. 동남아시아의 불상, 인도의 불상, 일본의 불상 등등 말이죠. 그러고보니 한국의 불상은 안본지 꽤 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longseason at 2011/01/17 10:25
그것도 재미있네요. 그만큼 특징적인 개성이 뚜렷해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나저나 레빈님도 불상을 좋아하신다니... ^^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같이 소더비 경매 찾아다니면서 불상이나 콜렉팅하죠. ㅎㅎㅎ
Commented by Levin at 2011/01/17 10:50
헐 소더비라 듣기만 해도 좋네요. 전 그냥 앤틱 샵의 불상이라도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너무 비싸서 말이죠 ㅠㅠ
Commented by longseason at 2011/01/17 12:08
홍대 서점들 가면 간혹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경매 도록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걸 살펴 보면...소더비나 크리스티가 박물관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니겠더라구요. 품목, 장르, 콜렉션, 시대별로 작품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저도 인도나 남동아시아 작품들 도록 몇 권을 샀어요. 물품마다 평가액이 적혀 있는데 저렴한 것은 1000-2000불짜리도 있습니다. 물론 제 눈에 괜춘하다 싶은 것은 200,000불 이상 가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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