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9일
림킴 [Generasian] : 애매한 나의 자각


몇 년 전에 임근준 선생 강연에 간 일이 있습니다강연 말미에 저는 한국인 가운데 온전히 서구의 근대미술의 전통에 의탁하여 성공을 거둔 미술가가 있는가 물었고없다는 단호한 답변을 들었습니다그렇다면 우리에겐 서구처럼 잘 정리된 도큐먼트나 아카이브도 없는데어떻게 이좀비의 시대에 저들과 경쟁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제가 들은 답은 그래도 우리에겐 한국 미술사라는 레이어가 있지 않은가하는 대답이었습니다당시에는 그게 답이 되나궁여지책으로 나온 턱없이 부족한 답변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물론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뭔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구요

 

일반적으로 어느 분야든지 개괄적인 것을 배우는 순서는 정해져 있습니다미술은 서양미술사를배우고그 이해를 바탕으로 아시아와 한국미술사를 배웁니다.문학이든 건축이든다른 분야도 대개 비슷할 것입니다이 순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뭔가 불안하죠어느 분야이든지 시금석과 기준이 되는 것은 서양의 역사이고그 언어로 서술되고 설명되지 않으면 통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이 순서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내가 가진 한국미술사라는 레이어가 의미 있는 쓰임새를 가지려면 반드시 서양미술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무엇이든 그것을 일단 세계사적인 맥락에 놓고 좌표를 찾아보는 것은 손해볼 일이 없는 작업처럼 느껴지긴 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삶은 서구의 근대적 가치 속에서 영위되고 있습니다근대적 가치들의 보편성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줍니다게다가 그것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확장되고 진화하고 있어 앞으로의 삶을 의탁하기에도 거부감이 없습니다어떤 의미에서는 푹 젖어서 살고 있지요우리는 동양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동양적인 것한국적인 것에 대해서 잘 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지금은 사서삼경을 공부하는 사람도 없고학교에서 서예나 시조를 가르치지지도 않습니다.동양적인 전통과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그러나 한편으로는 서양인들보다 동양적인 것한국적인 것에 대한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아무리 안배웠어도 그들보다는 훨씬 반복적으로 동양적인 것한국적인 것에 노출되었고조금 익숙한 것이 사실입니다사실 애매하죠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애매함의 자각자신이 처한 곤경에 대한 자각이 여러 사람에게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전개되는 것이 보입니다

 

림킴의 새 앨범도 이런 자각에서 비롯되어 전개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앨범의 컨셉인동양은 말이 동양이지구체적으로 파악되는 개념은 아닙니다막연하게 저는 재미교포나 유학생 사회에서 차별적 경험에 기초한 동양이 아닌가 짐작되는 정도그러니까 저는 알 수 없는 동양입니다컨셉을 보면 동양이라기 보다는 편견과 차별로 점철된 동양을 이미지를 미러링한 것처럼 보입니다음악을 들으면 이게 한국의 민요인가일본 악기인가중국 악기인가이거 너무 짬뽕아니야막 떠오르죠뭐 짬뽕이겠지요편견과 무지로 가득한 헐리웃 영화의 근미래 설정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무국적의 동양처럼 족보없는 짬뽕처럼 보이지요그래서 저는 림킴의 앨범을 들으면서 처음에 이 앨범이 괜한 트집이나 비아냥에 휘말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그러지 않았으면 했지요왜냐하면 저는 서양인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그렇게 동양적인 요소를 막 짬뽕으로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이건 엄격한 개념적 사고와 방법론이 요구되는 학술적인 작업도 아니고 음악이니까요더구나 이 분야에서는 너무 안써서 문제가 되면 되었지너무 많이 써서 문제가 발생하는 수준에는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음악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작곡가 진은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진은숙이 처음에 유럽으로 가서 각종 현대 음악 페스티벌을 둘러보면서 여기에서 곡을 발표하려면 뭔가 한국 전통적인 요소를 가미해야 겠구나 느꼈답니다거의 의무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어요.림킴도 똑같은 요구를 받았다죠. “좋긴 한데 좀 더 네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전통적인 음악이 없니?”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은숙씨는 그것이 자신의 길이 아니고심지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다행히 현대음악계에서도 그런 분위기는 점점 사그라들었죠아마 그 때 진은숙씨가 그 위험에 뛰어들었다면 오히려 지금은 한물간 작곡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죠진은숙씨의 대표곡 가운데 <생황 협주곡>이 있습니다중국의 악기죠.본인도 밝히고 있지만 생황을 선택해서 작곡한 것은 악기 자체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악기의 가능성을 보고 얻은 아이디어를 자신 만의 독창적인 음악으로 만들기 위해서 무려2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악기에 대한 이해그것을 어떻게 서구적인 배경에 놓인 자신의 음악 속에 연결할 수 있을지한마디로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죠그것도 우웨이라는 비루투오소 연주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그가 없었다면 더 오래 걸렸거나 불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한국의 전통과 단절되어 서양 음악의 전통 속에서 자란 분이 동양적인 악기 하나를 자신의 세계 속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류이치 사카모토를 예로 들어보죠음대 다닐 때도 중국음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들어본 일도 거의 없다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마지막 황제음악을 급하게 의뢰를 받고밖에 나가 중국음악 레코드 20장을 사서 듣고도쿄의 중국인 연주가들을 수배해서 일주일 동안 만든 것입니다천재지요베르톨루치 감독이 원하는 것은 이거였다고 합니다. “중국이 무대지만 이건 유럽 영화고전쟁의 격랑과 그 이전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현대 영화입니다그런 것을 보여줄 만한 음악을 만들어줘요.” 감독은 서양 음악적 문법에 익숙한그러나 동양적인 이미지를 연출해줄 수 있는 음악가를 원했겠죠엔니오 모리코네는 아마 영화를 보고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중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까요하지만 류이치 사카모토는 했습니다중국음악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도 말이죠그는 아시안이니까요그리고 결과는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합니다중간에 팝스타처럼 행세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류이치 사카모토는 음악은 동양적인 이미지를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물론 진은숙씨처럼 신중한 사람은 하지 않을 작업들이죠

 

저는 한국적인 것동양적인 것에 대해서 진은숙씨처럼 신중하게 접근해도 좋고류이치 사카모토처럼 직관적으로 접근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기질의 문제 일까요아무튼 저는 오히려 과감한 직관적인 접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림킴의 음악처럼 말입니다뭘 다 알고 배우고 써먹기엔 이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죠하버드에서 발간된 <하바드 중국사서문을 보면 편집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부지런한 역사학자라면 중국에서 출간된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하지만 적어도 20여년전부터는 이런 일이 어려워졌고오늘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점점 동양에 대한 도큐먼트가 쌓이고 아카이브가 거대해지고 있고앞으로는 온전히 배우고 익혀서 무언가를 써먹는 것은 어려워지겠지요서양사라는 레이어를 장착하는데도 시간과 노력이 얼마인데 동양까지어휴어려운 일이지요따라서 동양적인 요소를 끌어다가 파편적이고 분절적인 작업으로 써먹는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근데 또 이게 막 시도해본다고 결과가 항상 좋은 건 아니지요경험적으로 노골적으로 국악기가 삽입되거나 국악풍을 내세우는 음악은 짜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음악의 나머지 부분과 구조적으로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장 좌판에 나래비로 늘어선 물건들처럼 그냥 늘어놨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더 듣고 싶지 않죠림킴의 음악에서는 다행히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이건 재능이죠그리고 No Identity의 실력이기도 하구요이게 중국풍인가 일본풍인가 모르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어도 별로네짜증나네 하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첫 곡은 <민족요>… 대단하죠왜 민족요인지 모르겠지만임팩트를 주기 위한 작명일까요저는 민족에 그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가 없어서 좀 그렇지만암튼 이 곡은 개인적으로 이 곡은 이 앨범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나머지 곡들은 사족처럼 보일 정도죠사실 전통음악민속음악은 19세기 무렵부터특히 소비에트를 비롯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앞세우는 곳에서 프로파간다로 활용되어 왔습니다특권적인 계급과의 반대편에 선 전통적인 민속음악의 프로파간다 활용은 쉽게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전두환 정권의<국풍81>을 떠올려도 좋구요그런데 케이팝에서 민요가 새로운 세상을 선전하는 프로파간다로이런 방식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입니다게다가 제주 해녀의 노래를 선택한 것은… 완벽하죠지금 대한민국의 여성들의 자각이 현대적인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시공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커넥티드되는 느낌겁나 든든한 뒷빽이 갑자기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  음악을 듣고 있으면 전율이 흐릅니다

 

또 이 곡에는 마법같은 순간이 있어요예를 들면 라디오헤드의 최근 앨범에 수록된 <Burn The Witch>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종 일관된 현악 파트나 언니네 이발관 <혼자 추는 춤>350초대부터 소릴 이어가는 기타도 그런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냅니다음악 전체를 요약하면서 예술적인 비전이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이죠. <Burn The Witch>는 작금의 세계가 처한 혼란과 공포를 고스란히 담은 새로운 교향곡처럼 다가온다면 <혼자 추는 춤>은 명백하게 세월호를 소환하면서 곡의 후반 부에서는 눈 앞에 거대한 고래의 압도적인 움직임이 펼쳐 보입니다. <민족요>에서는 비나이다비나이다가 등장하는212초부터 그런 마법의 순간이 펼쳐집니다이건 지금 한국의 상황과 바람을 요약한 거대한 탱화를 보는 느낌입니다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고 선포하지만 아직 현실은 지옥도인거지요남자인 저도 이렇게 강렬한 느낌을 받는데 여자분들이라면 아마 더 생생하실지 모르겠습니다모든 음악이 그렇듯이 [Generasian]도 음악에 내재된 가치와 더불어 이 음반을 둘러싼 외적인 환경과 연결된 요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언젠가 지금 외적으로 연결된 상황의 많은 부분이 해소되어 지금처럼 큰 의미를 갖기 어려운 때가 온다고 하더라도 이 <민족요>의 마법과도 같은 순간은 빛을 잃지 않을 겁니다아마 또 다른 그때의 상황과 연결되어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되거나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요

 

<Yellow>와 <디지털 칸>은 <민족요>만큼 에너지가 넘칩니다음악에서나 메시지에서 지금 꺼내서 보이지 않으면 안되는감출 수 없는 내적인 절박함이 느껴지지요사운드도 흠잡을 데 없습니다그에 반해서 <Mong>이나 <Yo-soul>은 상대적으로 집중도가 떨어집니다바꿔 말하면 앞의 빠른 두 곡은 현실과 공명하는 절절한 이야기로 다가오는 데 반해서뒤의 느린 두 곡은 현실적인 연결점이 느슨해서인지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사운드에 있어서도 다른 곡들과는 다른 결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좀 더 적막한 배경 속에서 피어오르는 사운드? <Mong>이나 <Yo-soul>의 세계는 확실히 지저분한 현실의 지옥도와는 다른 풍경이니까요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그러나 예술가에게는 현실적인 경험과 큰 접점이 없는 만들어낸 이야기라도 생생하게 작동하는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됩니다음악에서 그런 세계는 소리의 정교한 디자인에서 출발해서 완성됩니다그런 점에서 <Mong>이나 <Yo-soul>의 완성도는 아쉽습니다그렇지만 장자에서 조너선 스위프트까지 인용되는 것은 좋네요아무튼 벌써 Bjork이나 FKA Twigs,  M.I.A와 비교하는 분이 많은데 그런 평가는 다음 번 정규앨범까지 유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림킴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그것이 이 앨범의 음악에 덧대어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본인 말처럼 토해낼 것이 쌓여 그것 만으로도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 보입니다그러나 다음에 혹은 다다음에그 이야기거리들이 모두 걷히고 온전히 음악만으로 사람들 앞에 설 때도 있을 겁니다그 때를 염두에 두고 있을까요뭐 알아서 잘 할 거처럼 보여요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다만 애매한 나의 위치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 작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궁금합니다. ‘동양 소녀는 그저 통과점에 지나지 않을까요?   

 

 

by longseason | 2019/10/19 19:31 | 음악
2016년 04월 16일
추도사


얼마전 저는 치유공간 이웃에서 열린 김건우 학생의 생일 파티에 다녀왔습니다치유공간 이웃에서는 희생자 학생들의 생일을 챙겨오고 있는데, 그날은 건우 학생의 생일을 맞아 가족과 친구들, 지인들이 모여 건우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건우의 학원선생님이었다는 이유로 초대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사람들은 평소 건우가 어떤 아이었는지, 무엇에 관심 있고, 어떻게 사는 아이였는지 각자가 가진 추억을 풀어놓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건우 아버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건우가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건우가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건우 아버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도 그 자리에 건우가 있으면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부모님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건우를 비롯한 희생자 학생들이 다시 돌아와 여기 이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아이들이 이 자리로 돌아온다면, 모든 것이 평온하게 제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행복하게 살아갈 것 같은 느낌입니다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목소리가 들리면서 마법처럼 세상이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 갈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축복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부모님들께서 기억하시는 아이의 모습과 친구들이 기억하는 모습, 학원에서 선생님이었던 제가 기억하는 모습이 조금씩 다르기도 합니다늠름하고 의젓한 모습도 있는 반면, 말썽을 피우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기억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도 이러한 비극의 가운데 놓일 아이들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한 가족의 일원이었고, 누군가의 절친이었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누어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뒤돌아보면 어디선가 저 왔어요.”하고 나타날 것처럼 우리에게 생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제게 세상은 이전과는 무척이나 다르게 보입니다. 그리고 다르게 보이는 만큼 저도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당연히 작동할거라고 기대했던 것들이 작동하지 않고, 당연히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책임을 지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걸 그저 시간에 묻어버리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로 우리는 많은 것들과 싸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도무지 가만히 앉아서는 제대로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함께 하고, 힘을 보태고 계십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따스한 손을 내밀어주시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것 하나입니다. 진실입니다.그러나 당연히 밝혀지리라고 기대했던 것들이 많은 것에 가려지고 뒤틀리고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마저도 싸워서 얻어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사랑을 주고 받았던 희생자들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지만,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그들이 마지막의 순간에 보여주었던 의연하고 침착한 모습들을 떠올려 보십시오.우리도 진실과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해서, 또 똑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아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침착함과 의연한 모습을 이어 받을 수 있으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아이들이 보여주었던 침착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몇몇의 희생자 아이들과 개인적인 인연을 가졌던 데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학원에서는 제가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세월호 이후로 아이들은 제가 가르쳤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더 큰 가르침을, 제게 베풀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아이들이 우리에게 베푼 가르침이, 개인의 차원에서는 물론이고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작동할거라고 믿습니다. 어른들이 만든 시스템은 비극 앞에서 아무런 작동을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가르침은 우리가 조금 더 나은 개인,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이렇게 우리 사회의 곳곳에 남아서 기억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우리들을,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세상으로 바꾸어 놓는 모습을 곧 보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건우 아버님께서 건우 생일 파티에서 아주 오랜만에 건우가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언젠가 달라진 세상을 보면서 우리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오랜만에 이 세상에 아이들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감사합니다.


============


작년 세월호 1주기에 아내가 썼던 추도사



by longseason | 2016/04/16 13:55 | 잡담 | 트랙백
2015년 12월 04일
캡슐 커피 : 지옥에서도 특석 A Special Place In Hell : Pod Coffee

가게에 있다보면 종종 캡슐커피에 대해서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커피를 좋아하는데 캡슐커피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하신거지요.
그 분들만이 아니라 캡슐커피에 관해서 궁금한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로스터리 카페인 블루보틀에서 나온 
<The Blue Bottle Craft OfCoffee>라는 책을 보면
캡슐커피(해외에서는 캡슐커피보다는 Pod Coffee로 불립니다)에 대해서 다루면서
제목을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캡슐 커피: 지옥에서도 특석 A Special Place In Hell : PodCoffee"

블루 보틀의 제임스 프리먼은 캡슐커피가 맛도 없고(Bad), 옳지 않다(Wrong)고 말합니다.
우선 캡슐커피들은 커피와 관련된 주요 정보들을 제대로 표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종류의 커피들이 블렌딩 되었는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 로스팅되었는지,
언제 분쇄되었는지, 필요한 정보가 정확하게 표기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네스프레소와 같은 경우는 산지 정보를 표시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콜롬비아의 아라비카, 베네수엘라의 아라비카, 토코의 향긋한 로부스타' 이런 수준입니다.
배합 비율이나 농장정보까지 표시되는 스페셜티와 비교하면 그다지 의미 있는 정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캡슐커피의 추출과 배합 비율도 문제가 됩니다.
보통 한 캡슐에 5g(0.2oz)이 담겨 있는데,
이걸로 360ml(12oz)의 아메리카노를 만들면 추출비율이 대략 60:1을 넘어갑니다.
좋은 카페라면 요즘은 보통 18g-20g 정도의 원두를 사용해 30-40g을 추출하여
240-260ml 정도의 아메리카노를 만들 것입니다.
캡슐 커피의 추출 비율과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머신까지 고려하면 설상가상입니다. 
캡슐 머신은 추출 시간이나 물온도 설정, 혹은 물분사 패턴 등
컨트롤 가능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차이가 있다고 설명해 놓은 다양한 맛과 향의 캡슐을
그 안의 원두 특성과는 관계 없이 이미 결정된 한 가지 방식으로 마셔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물의 양을 조절하는 정도겠지요.

제임스 프리먼이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캡슐커피가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캡슐 무게에서 원두는 1/3 이하이고 나머지는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쓰레기 입니다.

제임스 프리먼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캡슐커피가 비행기나 혹은 배로 운송되고 매장에 깔리고 판매되기까지의 시간을 고려하면
맛과 향에 있어서도 최적의 상태로부터 매우 멀어져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두의 로스팅 날짜, 산지나 블렌딩 등 정확한 정보가 있는가? 없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여러 가지 변수를 조절하여 즐길 수 있는가? 없습니다.
친환경적인가? 아닙니다.
가격이 저렴한가? 아닙니다.
맛이 있는가? 그럴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편리하다는 것 외에는 장점이 없는 셈입니다.
클레버나 에어로프레소처럼 쉽고 편한 도구들이 많은데 굳이 비싼 캡슐커피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by longseason | 2015/12/04 19:46 | 커피 | 트랙백


<< 이전 페이지 | 다음 페이지 >>